2020년 10월, 인기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돌연 충격적인 공지를 올렸다.
한국 이용자들은 만 19세 이상 성인만 마인크래프트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인크래프트는 원래 국내에서 12세 이용 등급 판정을 받은 게임이었다. 많은 초등학생이 즐겨 하는 까닭에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게임이기도 했다. 그런 게임이 졸지에 성인 게임이 되어버리니 이용자들은 ‘멘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원인은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청소년들의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에 있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회사 계정과 게임 계정을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셧다운제로 인해 한국에서는 별도의 시스템이 필요했고, 그 비용을 부담할 바엔 성인 이용자만 받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제가 낳은 웃픈(웃기고 슬픈) 소식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2011년 시행된 이래 끊임없는 논란을 낳아온 게임 셧다운제는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게임 셧다운제는 어떻게 도입되었을까? 그에 앞서 게임을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 게임 수출 규모가 연간 18조 원(2020)을 넘는 까닭에 게임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하는 시선도 많지만, 적어도 10여 년 전 정치인들에게 게임은 ‘우리 아이들에게 해로운 그 무엇’이었다.
“과도한 인터넷게임으로 중독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으나 자율적인 노력으로는 대처가 어렵다”라는 이유로 게임 셧다운제가 시행되었고, 심지어는 게임을 알코올‧도박‧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한 이른바 ‘게임중독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부정적 시선이 셧다운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지금이야 우스꽝스러운 정책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게임 셧다운제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은 아무리 타당한 목적을 가졌더라도 시행되기 어렵다. 연금개혁이 대표적인데, 만일 이런 정책을 추진한다면 그 정치인은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셧다운제 역시 청소년들과 관련 업계로부터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그런데도 통과될 수 있었던 건 그 이상으로 학부모 단체의 지지를 얻은 덕분이었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한 건 그래서다.
정치 뉴스는 어렵다. 요즘만 하더라도 선거제도 개편이나 권력기관 개혁과 같은 소식들이 정치 뉴스를 채운다. 더러는 ‘상임위원회 사보임’이나 ‘패스트트랙’처럼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으레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대립하지만, 사실 정치만큼 내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드물다. 정치는 곧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규칙을 만드는 과정’인 이유에서다.
정치를 단지 여의도에 있는 어른들의 싸움으로만 본다면 곤란하다. 실제로 정치는 우리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는 나의 머리카락 길이나 복장까지 규제하곤 한다.
1960~70년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대대적으로 시행된 장발 단속과 미니스커트 규제까지 갈 필요도 없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경기도에 사는 많은 학생이 경험한 것이니 말이다.
200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청소년들에게는 공통적인 염원이 있었다. 부끄러울 정도로 짧게 잘라야 하는 ‘두발 규제’를 완화해달라, 아침 7시까지 학교에 가게 하는 ‘0교시’를 없애달라, 밤 10시까지 학교에 강제로 붙들려 있어야 하는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없애달라 하는 것들이었다.
아침 7시까지 학교에 가서 밤 10시에 나온다는 게 지금은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들리지만, 2000년대엔 서울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그랬다. 청소년들은 꿈과 진로에 상관없이 온종일 학교에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특히 교육감 후보들이 ‘0교시‧강제 야자 폐지’를 공약하고 당선되면서 그 제도들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전국 각지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엄격한 두발‧복장 단속을 완화했다.
여기에는 200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청소년활동이 한몫했다.
청소년의회 등의 참여기구를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정책’들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덕분이다. 제도를 직접적으로 바꾼 건 교육감 같은 정치인들이지만, 그들을 바꾼 건 청소년들이었다.
세대가 다르면 경험한 시대도 다르다. 각 세대가 느끼는 고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고충을 당연히 알 거로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오히려 세대와 계층이 달라서 당연히 모른다고 봐야 정상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내 권리는 그만큼 소외된다.
성남시청소년재단이 2022년 3월 실시한 ‘선거인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인과 정당을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청년이 58.7%에 달했다(그렇다 26.2%, 보통이다 30.4%).
이와 같은 불신은 우리 정치가 보여준 구태로 인한 실망 때문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세대와 계층이 다른 데서 오는 생각의 차이가 더욱 크게 작용한다. 게임 셧다운제처럼 말이다.
내 일상을 바꾸기 위해선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학생회나 청소년의회 같은 자치활동을 통해 일상을 바꾸는 정책을 고안하는 것도 좋고, 나를 대변해줄 정치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조사에서 많은 청소년이 자치활동 등을 통해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주로 학생회(52.3%), 수련관(49.1%) 등을 통해서였다. 선거의 경우 설문 참여자 중 무려 94%가 지난 대선에서 투표했을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웠다.
처음에 이야기한 마인크래프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인크래프트 논란이 확산하자 정치인들은 그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내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했다.
그 결과 2022년 4월 19일, 논란이 있고 나서 약 1년 반이 지나 마인크래프트의 제작사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접속을 다시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인크래프트를 사랑한 전국 청소년‧청년들의 승리였다.
정치는 가치의 싸움이다. 정치인들은 증세와 감세, 큰 정부와 작은 정부, 개발과 환경과 같은 가치들 사이에서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그러나 정치는 그에 앞서 나의 일상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나 자신과 또래가 느끼는 일상의 고충들을 발견하고 바꿔나가는 것이야말로 참여 활동, 또는 선거의 목적이다. 동시에 그 자체로 훌륭한 정치다.
이 글을 읽은 청소년‧청년들이 자신 있게 선거와 정치에 임하길 기원하고, 응원한다.
청년정치크루 대표 이동수